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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오렌지 카운티 김동수 회장의 쿠바 방문기
  • 이혜원 대표
  • 등록 2023-09-21 1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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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바 한인 후손들과 함께 한 78주년 광복절 행사


지난 8월 10~ 16일 쿠바 한인 후손들과 함께 78주년 광복절 행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제20기 미주평통자문위원회가 쿠바를 찾았다.

 

박요한 미주지역 부의장 직무 대행과 박래곤 중미 카리브 협의회 회장과 임원들이 작년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행사로 12 지역 협의회 회장들이 함께했다. 


하바나에서 8월 11일 저녁 하바나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2시간 반 정도 이동하여 휴양지 도시인 바라데로 Melia Las Americas에 여장을 풀었다. 바닷가 앞에 세워진 이 호텔은 상당히 크고 현대식으로 지어졌으며 체감온도 백도 이상의 무더위를 말끔히 가시도록 해 주었다. 


8월 12일 아침 일행은 광복절 행사를 위해 약 30분 정도 떨어진 카르데나스 교회당으로 가서  쿠바 한인 후손들과 한글 학교에 다니는 쿠바인들 250여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쿠바의 한인 역사는 멕시코에서 시작된다. 멕시코 유카탄반도에서 힘들게 일하던 1세대 한인 이민자들은 쿠바의 노동환경이 더 좋다는 소문을 듣고 약 3백 명이 배를 타고 쿠바로 건너간다. 


이때가 1921년 3월 25일이다. 당시 금값 같던 설탕의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며 1880년대부터 성황을 이루어왔던 사탕수수 농장 일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마침 그때 쿠바에서는 선박 등에서 쓰는 밧줄의 재료가 되는 에네깬 플랜태이션이 한참 발전하게 되고 많은 한국인이 에네껭 노동일에 참여하게 된다.


이즈음 대한민국에서 3.1 운동이 일어난 지 2년째로 접어들고 한인들은 힘든 노동일을 하면서도 조금씩 돈을 모아 중국 상해 임시정부로 독립자금을 보냈다. 이를 이끈 중요한 한인 지도자가 바로 임천택씨다. 그는 쿠바 이민 한인 1세로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이민 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날 우리는 임천택 씨의 딸 마르타를 만났다. 그녀는 “오랫동안 쿠바에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잃어가기도 했지만  찾아주는 한국인들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알게 된다”고 했다. 이제는 90세에 접어들고 한국말도 잊었지만 자신이 직접 쓴 "쿠바의 한인 – “Coreanos en Cuba" 이란 책을 박래곤 회장에게 건네 주었다. 


현재 쿠바에는 약 천 명 정도의 한인 후손들이 살고 있고 카르데나스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날 광복절 행사에서 연주한 한글학교에 다니는 한인 후손들과 쿠바 학생들이 연주한 피리 곡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멕시코 협의회와 다른 지역 협의회에서 준비해 간 선물을 드렸다. 쿠바 광복절 행사를 준비하면서 쿠바분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생활필수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미리 미국에서 준비해 온 비누, 치약, 칫솔 등과 약간의 의약품, 식품을 준비해서 쿠바 입국을 했다. 


행사 중 우리는 다 같이 대한민국 만세, Viva Cuba를 태극기를 흔들며 외쳤고 쿠바 문화 행사도 보며 한국인은 어디에 살던, 얼마나 오래 떨어져 살든 같은 한 민족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한인들이 쿠바에 처음으로 도착한 마탄사스 엘볼로를 방문하고자 했으나, 길 찾기가 너무 어려워 방문은 하지 못했다. 현재는 기념 비석만 남아있다고 한다. 


일행은 호텔로 돌아와 곧바로 마지막 20기 미주지역 운영위원회를 하였다. 지난 2년 동안의 임기를 다 마치며 모든 회장님의 근황도 듣고, 오늘 있었던 광복절 행사 후기도 들으며 그동안 깊게 정들었던 회장님들과의 우정은 더욱 깊어져갔다.



다음날, 약 40분 떨어진 바다 Catamaran 으로 이동해서 돌고래와 허그도 하고, 랍스터도 잡아 즉석요리도 해 먹고, 스노클링도 하며 오래간만에 휴양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쿠바는 Caribbean 해에 있는 섬나라로 습기로 인해 하루 종일 무덥고 땀이 나며 한국의 여름 무더위보다 더하며 에어컨도 곳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들었지만 바다속으로 몸을 내 던질 때는 최고의 기분이었다.


8월 14일 우리 일행은 바라데로에서 하바나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는 도중 여행 가이드 레이날도는 쿠바의 역사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하였다.


1492년 콜롬보스가 쿠바를 발견한이후 스페인이 여기 살던 인디안 원주민을 모두 학살하고 이후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데리고 와서 나중 백인과의 혼혈아로 태어난 후세들이 지금의 주류 쿠바인이다. 


1898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후 미국의 식민지로 지내다가 쿠바인의 불만이 커지고 혁명 세력이 자라나 결국 1959년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 혁명군이 쿠바를 지배하게 되면서 결국 사회주의로 바뀌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후 미국과의 갈등으로 케네디 대통령 때 핵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거치고 지금의 쿠바가 되는 과정 또한 흥미로웠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오십여 년 만에 미국과 다시 국교를 맺어 잠시 경제 부흥을 이루는가 싶더니 2016년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다시 관계가 악화되고  2019년 12월부터 3년 반 이상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쿠바의 경제는 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하바나로 오는 도중 핀카 비히아에 있는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지금은 박물관으로 open)을 구경하고 그의 삶을 돌아보았다. "노인과 바다 " 배경이 된 꼬히마르 어촌 마을도 돌아보고 실제 헤밍웨이가 낚시에 썼던 배도 박물관에 있었다. 술과 여자,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고 많은 글을 쓰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62세의 나이로 건강 악화에 따른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생을 마친 그의 삶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하바나로 돌아와 오바마 대통령이 식사하고 지난 12년 동안 24명의 대통령이 와서 식사했다는 산크리토발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서서히 쿠바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파세요 델 프라도 호텔은 바닷가 바로 옆에 세워진 근사한 호텔이였다. 관광 사업을 확충하려는 정부의 의지로 쿠바에는 꽤 좋은 호텔들이 상당히 많다. 


곧바로 구 하바나 시내 투어에 나선 우리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 때 지어진 아르마스 광장, 샌프란시스코 광장, 비에하 광장, 까데드랄 광장을 걸으며 쿠바의 역사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헤밍웨이가 오래 머물렀던 Hotel Ambos Mundos와 작은 Florida라는 뜻의 floridita bar에도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많은 젊은이들로 꽉 찼으며 생음악이 흘러나와 우리를 무척 즐겁게 해 주었다. 


사실 쿠바에는 많은 곳에서 이렇게 레게 뮤직이 공연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이들이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는지 그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쿠바는 국토 면적이 남한 땅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11.5 Million, 하바나에는 약 2 million이 산다고 한다. 남한 인구가 약 4.5배 더 많은 셈이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광복절 78년이 되는 날이 밝아왔다. 우리 일행은 1920, 30년 전에 만들어진 옛날 미국 포드 폰티악 오픈카 7대와 밴 1대에 나눠타고 센트로 아바나를 지나 혁명 광장으로 갔다.


혁명 탑과 공산당 본부 건물, 인민혁명을 위해 쉽고 편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전 생애를 쿠바뿐만 아니라 남미의 여러 나라들과 아프리카 콩고까지 찾아가서 민중을 위한 혁명을 완성하려고 하였던 체 게바라 부조가 크게 그려진 건물이 눈에 띄었다. 

 


체 게바라는 작년 이맘때쯤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들은 것이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그는 원래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였지만 친구와 함께 남미 전역을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면서 많은 노동자와 인민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또 부가 제한된 극소수계 귀족층에 분배되는 것을 보고 사회주의 혁명에 큰 관심을 갖게된다. 


나중에 멕시코로 피난가 있을 때 마침 쿠바에서 비슷한 이유로 멕시코에 피해 와서 살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와 마음이 맞아 하룻 밤사이에 같이 혁명 동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때로부터 그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신념은 무력으로라도 인민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동참한다. 


1961년 쿠바 혁명이 방향을 잡아 갈 때 그는 쿠바 시민권을 받고 초대 산업 장관, 은행 총재 등을 지냈으나 추후 혁명을 인민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맘이 안 맞아 1965년 쿠바를 떠난다.  그후 과테말라 게릴라전을 거쳐 볼리비아 게릴라 전투에 참여하다 정부군에게 잡혀 CIA 묵인하에 사살당한다. 이때 나이가 고작 39세였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혁명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 사후에 그를 다시 각인시켜 이곳 쿠바와 남미 여러 나라에서는 그를 영웅시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나도 기념품으로 체 게바라가 즐겨 썼던 모자를 하나 사서 하바나 시내 거리를 쓰고 다녔다. 


8월 16일 우리 일행은 하바나에서의 공식 행사로, 우리 일행은 하바나 한국 문화원과 한글 학교Centro Cultural y Escuela de Idioma Coreano en Cuba를 방문했다. 장소는 협소하고 더웠지만 102년 전 이곳 쿠바로 이민 온 선조들의 후손이 한국 문화를 지키기 위해 한글도 주 5일 수업하고 한국 문화 행사도 진행한다는 설명에 대한민국의 뿌리는 어디에 가도 없어지지 않음을 눈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170명에 달하는 쿠바 현지인 학생들에게 약 3천 5백 불 상당의 물품을 증정하고 서투른 한국어로 서로 얘기도 나누며 가족 같은 기분을 느꼈다.


쿠바 한국문화원 및 한글학교는 2014년 개원 당시, 랜트비 3천 불이었다. 재외동포재단 50%, 중미 카리브 50%로 랜트비를 충당하다가, 중미카리브협의회의 부담금을 점차 줄였다. 


2022년 한국문화원 및 한글학교를 이전하면서 랜트비를 2000불로 줄이고, 현재는 재외동포청이 100% 랜트비를 지원하고 있다. 중미카리브는 이전 비용 및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나 아직 함께 모일 강당이 없어서 증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쿠바 문화원 및 한글학교 교장 정호현은 교실 앞 마당에 지붕도 올리고, 조명도 달아 강당 및 K-Pop 센터를 만들고자 하나 재정 문제로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고충을 드러냈다. 우리 모든 협의회장과 자문 위원님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돕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특별히 샌프란시스코에서 오신 구은희 상임 위원은 직지심경 설명 및 한글 교수법 강의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높은 문화 역사를 전파하였다.



오후에는 쿠바 영사협력원으로도 일하고 있는 문윤미 쿠바 자문 위원의 안내로 쿠바의 가우디라고 불리는 미술관 같은 푸스터의 집(Casa de Fuster)도 방문하고 럼주 박물관(Museo de Ron)도 구경하면서 쿠바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저녁은 문 위원이 집으로 직접 초대 해주어 쿠바인이 실생활도 접하고 최고의 저녁 대접을 받았다. 쿠바에서는 외부인을 집으로 초대해 같이 식사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 같이 보였다.


지난 6일 동안 쿠바에서 미주협의회장 및 자문위원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특히 8월 14일 하바나에서 약 15명의 한인 후손 회장단을 초청해서 저녁 식사를 하며 Antonio Kim 쿠바 한인 후손 대표자와 마르타 임 할머니를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마지막 밤에는 쿠바 내셔널 호텔 파리지엔 카바레에 가서 쿠바의 역사를 춤과 음악으로 표현한 Habana de Fiesta 쇼도 보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마침내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각자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우리의 우정과 추억이 오래 남을 것이라 확신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언제 다시 찾아뵐지는 모르지만 쿠바에 있는 우리 나이 드신 한인 후손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빌며 우린 자식과 부모가 헤어지는 마음처럼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남북통일이 이뤄지는 그날, 다시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쿠바에 사는 한인 후손들의 건강과 축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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