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에서 의약품은 질병 치료에 필수적인 존재지만, 과도한 약물 복용과 오남용이 새로운 건강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고령층을 중심으로 여러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다제약물(polypharmacy)’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의료계에서는 “약이 병을 키우는 악순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의료계에 따르면 한 달 이상 매일 5개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내내 5개 이상의 약을 상시 복용하는 비율도 15%를 넘어섰다. 미국과 일본 역시 비슷한 상황으로, 고령층의 과다 복용 문제가 국제적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약물 과다복용이 단순한 부작용 수준을 넘어 뇌·간·신장 등 핵심 장기를 장기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향정신성 의약품과 수면제, 일부 진통제는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수면 중 무호흡이나 심장마비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약물 중독 역시 단순한 습관 문제가 아닌 ‘뇌 질환’으로 분류된다. 의료계에서는 약물 중독 환자의 기대 수명이 일반인보다 평균 10~20년 짧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반복적인 약물 사용이 뇌의 보상 체계를 변형시키고 인지 기능 저하와 조기 치매 위험까지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들의 높은 병원 이용률도 과잉 처방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특히 한국인들은 높은 병원 이용률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인의 연간 의료기관 방문 횟수는 17.5회로 OECD 평균의 약 2.8배 수준이다.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에도 해열제·진통제·기침약·소화제·위장약 등을 한꺼번에 처방받는 경우도 흔하다. 이에 따른 약제비 지출도 급증해 연간 건강보험 진료비 중 약제비 비중은 26조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코리아타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번에 너무 많은 약을 처방 받고 또 복용한다.
의료계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처방 행진(Prescribing Cascade)’ 현상이다. 한 약의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또 다른 약을 처방받고, 다시 그 약의 부작용 때문에 새로운 약을 복용하는 악순환 구조다. 고혈압약으로 인해 부종이 생기면 이뇨제를 추가하고, 이후 칼륨 부족이나 위장 장애 등 또 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약물 간 상충작용 위험도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항응고제 ‘와파린’을 복용 중인 환자가 일반 소염진통제(NSAIDs)를 함께 사용할 경우 뇌출혈이나 위장관 출혈 위험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 또한 고령층이 흔히 복용하는 소염진통제는 혈압을 조절하는 프로스타글란딘 생성까지 억제해 고혈압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문제로 최근 세계 의료계에서는 ‘탈처방(Deprescribing)’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불필요한 약을 줄이고 생활습관 개선 중심으로 치료 방향을 전환하자는 취지다. 한국에서도 건강보험공단을 중심으로 다제약물 관리사업이 확대되고 있으며, 약사가 직접 환자의 복용 약물을 점검하는 시스템이 강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약은 잘 쓰면 명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약”이라며 “약을 더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꼭 필요한 약인지 점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어 “최고의 처방은 결국 올바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라고 조언했다.
강재상 법조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