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매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곡들을 들으며 그의 연주를 통해 쇼팽의
음악적 감성과 기교를 느낌과 동시에 쇼팽이 우리 음악사에 가치 있게 남긴 ‘에튀드’ 에
대해 다시금 깊게 생각하게 했다.
음악전문 칼럼리스트 임미경교수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에튀드(Étude)’라는 용어를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과 생소한 분들을 위해 에튀드가 무엇인지,
쇼팽의 에튀드는 어떠한 음악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먼저, 에튀드’(étude)는 프랑스어로 ‘연구’란 뜻으로 음악에서는 악기 연주를 위해
수반되어야 하는 테크닉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연습곡’을 칭하는 말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분들이라면 ‘체르니’를 배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피아노 진도 과정의 척도로 자주 언급하는 이 피아노 교재가 바로 ‘연습곡’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체르니 30번’ 은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30개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교재로서
아르페지오 연습, 스케일 연습, 옥타브 연습, 화음 연습, 고른 음을 내기 위한 연습 등이
포함되어있다. 이것은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해 구상된 곡들로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연주회용 곡은 아니다.
쇼팽 이전의 작곡가들의 연습곡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대부분은 기술 향상을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졌다면 쇼팽의 에튀드는 단순히 기술 훈련의 교육용 목적만이 아닌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예술 작품으로 발전된 것이다.
기술적 도전과 예술적 표현을 동시에 제공하는 쇼팽의 에튀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음악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로는 건반 악기의 발전에 따라 변화된 테크닉의 적용이다. 원래 에튀드는 연주 기술의
습득을 목적으로 작곡된 것인 만큼 악기의 발달에 따라 요구되는 테크닉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쇼팽 시대 이전의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 라는 건반 악기는
쇼팽 시기의 피아노와는 전혀 다른 소리의 메커니즘과 연주법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하프시코드는 건반이 눌러지면 잭이 현을 퉁겨서 소리가 나는 원리이며 건반이 내려가는
하강 폭이 얕아서 손가락 관절의 힘만으로도 연주가 가능했다. 또한 이 악기는 손가락의
크고 작은 터치에 따라 음색의 차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안정되고 일정한 건반 터치가
요구 되었다.
이후18세기에 와서 현대 시대의 피아노와 흡사한‘ 피아노포르테’ 라는 건반 악기가
탄생했다. 해머가 현을 때려 소리를 내는 원리로 음의 강약을 나타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쇼팽 시대의 피아노와 비교했을 때 음량도 적고 건반의 개수도 적었다.
19세기 쇼팽이 활동하던 시대에 이르러 이전의 피아노보다 건반이 좀 더 깊고 터치는
무거워지고, 건반의 개수도 늘어남에 따라 더 큰 음량을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강하고
풍부한 피아노 소리를 위해 손가락 관절만 사용하는 주법이 아닌 팔과 어깨 때로는 몸을
사용하는 강한 터치가 필요하기도 했으며 보다 섬세한 음악적 표현도 실현할 수 있었다.
‘겨울바람’이라 불리는 Op.25-3은 조용한 서정적 분위기로 시작 하다가 몰아치며 빠르게
질주하는 곡으로 연주자에게는 정확하고 민첩한 손의 움직임뿐 아니라 단단한 화음으로
표현되는 멜로디를 위해 적합한 신체 조절 능력과 강한 체력을 요구한다.
이렇듯 쇼팽 에튀드는 발전된 건반악기를 통해 보다 변화된 연주의 기술과 표현법을
실현했다.
둘째,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쇼팽은 그의 음악 창작활동에 있어 거의 피아노 곡에만
전념한 소위 ‘피아노 음악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피아노 음악에 대한
통찰력과 표현력이 뛰어나기에 피아노의 다양한 연주 기술뿐 아니라 깊이 있는 예술적
소재를 담은 쇼팽의 에튀드 작품들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온다.
쇼팽의 에튀드 총 27곡은 (Op10의 12곡, Op.25의 12곡, 작품번호가 없는 3곡) 10년의
기간(1829-1839)에 걸쳐 쓰여진 곡들로 이 기간 동안 그가 작곡하고 있던 다른 피아노
작품에서 요구되는 기술들을 포함시켰다. 피아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의 음악적
표현을 위해서 필요한 연주법이 무엇인지 그는 간파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는 작품번호 10번(Op.10)에 속하는 12곡의 에튀드를 피아노 연주 기교의
대가이고 작곡자인 리스트에게 헌정한 점을 보아 그 자신 스스로가 피아노 음악에 대한
높은 이해력을 가진 작곡가이며 뛰어난 실력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음악대학 피아노과 입시에서 쇼팽의 에튀드가 시험 곡으로 항상 지정되는 것은 학생들의
기술적 능력을 평가함과 동시에 그들의 음악적인 측면을 평가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쇼팽의 에튀드는 연주자가 직면하는 피아노 연주의 기술적인 문제들뿐만
아니라 피아노 음악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쇼팽 이후에 리스트를 비롯해 많은 작곡자들에 의해서 에튀드는 연주용 곡으로 쓰여지며
학습과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가진 피아노 음악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셋째, 쇼팽이 활동한 19세기는 음악사에 있어서 낭만주의 시대로 분류 되며 이 시대의
음악적 분위기는 예술적인 감성과 감정 표현이 강조 되던 시기로 작곡가들의 주관적인
음악관을 펼치던 시기였다.
기술 향상을 위한 연습곡이라는 틀을 깨고 새로운 음악 장르로 쇼팽이 에튀드를 대한 것은
어떠한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음악을 시도할 수 있었던 시대적 분위기가 한몫 했을듯하다.
자칫 기계적이고 지루할 수 있는 기술적인 훈련을 위한 연습곡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쇼팽은 피아노 소리를 통해 마치 성악가가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하듯 표현하였는데 그의
에튀드Op.10-3, Op.10-6, Op.25-7 등에서 느껴 볼 수 있다.특히 ‘이별의 곡’이라는 부제를
가진 Op10-3은 레가토(legato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연결)를 위한 연습을 포함
하는데 서정적인 선율선을 가진 이 곡은 쇼팽 스스로가 “이토록 아름답고 감미로운
멜로디는 없을 것이다”라고 흡족해 하였다고 한다.
또한 러시아에 대항한 그의 조국 폴란드를 위한 마음으로 1831년에 작곡된 ‘혁명’이라는
곡명을 가진 에튀드 Op.10-12는 그가 가진 조국에 대한 강한 애국심과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 곡은 기교적 측면에서 왼손의 독립적인 힘을 기르고 오른손의 옥타브를
위한 연습을 수반하고 있다.
이처럼 쇼팽의 에튀드는 기술적인 연습을 넘어서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적인 상징성을
피아노란 매개체를 사용해 시를 쓰듯 아름답게 때로는 격렬하게 음악을 표현했기에
그에게 붙여진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타이틀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쇼팽의 에튀드의 음악적 가치는 건반 악기의 변화에 따른 연주법을 위한 요구들이
구현됨과 동시에,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의 깊은 이해를 가진 작곡가의 시선에서 피아노가
실현할 수 있는 모든 기교적이고 음악적인 부분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시대적인
음악의 흐름이 연습곡에도 녹아 내려 쇼팽 특유의 서정적이고 때로는 화려하고 힘찬
표현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