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금융 서비스 인터페이스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중국 텐센트 클라우드와 말레이시아 디지털 은행 라이트 뱅크(Ryt Bank)가 손잡고 ‘대화형 금융(conversational finance)’ 서비스 확대에 나서면서 기존 모바일 앱 중심 금융 환경이 AI 기반 대화형 금융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텐센트 클라우드는 11일 말레이시아 AI 기반 디지털 은행 라이트 뱅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AI 기반 실시간 금융 서비스를 위한 통신·메시징 인프라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라이트 뱅크는 스스로를 “세계 최초의 AI 기반 은행”으로 규정하며, 기존 모바일 뱅킹 앱처럼 복잡한 메뉴를 탐색하는 대신 자연어 기반 명령만으로 금융 거래를 수행하는 ‘제로 UI(Zero User Interface)’ 모델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아멜리아에게 100링깃 보내줘”라고 입력하거나 말하면, AI가 상대 계좌와 송금 절차를 자동으로 인식해 거래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기존 모바일 뱅킹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던 송금 과정을 단일 문장 인터페이스로 단순화한 셈이다.
이번 협력에서 텐센트 클라우드는 자사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텐센트 클라우드 챗(IM)’ 기술을 제공한다. 이 플랫폼은 텐센트 생태계 전반에서 활용되는 메시징 인프라 기반으로, 월간 활성 이용자(MAU) 10억명 이상의 글로벌 메시징 환경을 지원하고 하루 최대 5,500억건 이상의 메시지를 처리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라이트 뱅크는 이를 활용해 AI 명령 처리와 금융 거래 정보를 실시간으로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금융 서비스에서 중요한 저지연(latency) 처리와 대규모 동시 접속 대응 능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서비스 출시 초기 약 5만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했지만, 시스템 다운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됐다고 밝혔다.
라이트 뱅크는 출시 약 7개월 만에 이용자 수 120만명을 돌파했으며, 전체 고객의 절반 가까이가 핵심 AI 서비스인 ‘라이트 AI(Ryt AI)’를 적극 사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라이트 AI는 YTL AI 랩스와 공동 개발됐으며, 말레이시아 주권형 AI 모델인 ‘일무(ILMU)’ 기반으로 구축됐다. 사용자는 자연어 대화를 통해 송금과 금융 조회, 거래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보안과 규제 대응 역시 주요 경쟁 요소로 강조됐다. 텐센트 클라우드는 종단간(end-to-end) 암호화와 메시지 감사(auditing) 기능을 통해 모든 금융 거래 기록의 추적 가능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금융권 수준의 보안 기준과 컴플라이언스를 충족하기 위한 구조라는 설명이다.
또 텐센트 클라우드는 전 세계 3,200개 이상의 엣지 가속 노드를 기반으로 저지연 글로벌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말레이어와 영어, 중국어를 지원하는 다국어 금융 서비스 환경도 제공하고 있다.
케네스 시우 텐센트 클라우드 인터내셔널 동남아시아 총괄 매니저는 “동남아시아는 디지털 혁신의 핵심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며 “라이트 뱅크와 같은 혁신 기업들이 차세대 금융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도록 안정적이고 고속의 AI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윌슨 순 라이트 뱅크 임시 최고경영자(CEO)는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더 빠르고 스마트한 AI 금융 서비스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텐센트 클라우드의 저지연 인프라가 고객 신뢰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생성형 AI가 금융 인터페이스 자체를 재편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AI 에이전트가 단순 상담을 넘어 실제 금융 거래를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향후 글로벌 금융권에서도 음성·대화 기반 AI 뱅킹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훈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