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핵심 광물 공급망을 중국에서 분리하기 위한 초대형 투자 동맹 구축에 나섰다. 총 1조달러(약 1500조원) 규모의 ‘팍스 실리카(Pax Silica)’ 투자 컨소시엄을 통해 기술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내 주요 매체들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최근 다국적 투자 연합체 ‘팍스 실리카’ 구성을 공식화하고, 핵심 기술과 자원 공급망을 하나의 블록으로 묶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국은 초기 자금으로 2억5,000만달러를 출자해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맡는다.
이번 컨소시엄에는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스웨덴 등이 참여하며, 일본 투자회사 소프트뱅크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도 창립 멤버로 합류할 예정이다. 각국은 국부펀드와 기관투자가를 통해 자금을 투입해 전체 운용 규모를 1조달러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팍스 실리카’는 평화를 뜻하는 ‘팍스(Pax)’와 반도체 소재 ‘실리카(Silica)’를 결합한 용어로, 반도체·AI·광물 공급망을 서방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적 협력체를 의미한다. 특히 희토류와 핵심 광물에서 높은 지배력을 가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참여국들은 반도체와 컴퓨팅, 데이터 인프라, 소프트웨어 플랫폼, 첨단 제조, 광물 정제, 에너지 등 전방위 산업에서 협력하게 된다. 이를 통해 글로벌 기술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한국도 주요 참여국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약 11조원 규모의 제련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팍스 실리카’ 협력 사례로 꼽힌다. 이 공장에서 생산될 갈륨과 게르마늄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전략 광물이다.
미국은 이번 컨소시엄의 범위를 에너지 분야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중동 지역 긴장과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를 계기로, 에너지와 물류 인프라까지 포함한 ‘통합 공급망 안보’ 개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1조달러 규모의 자금을 실제로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된다. 글로벌 외국인직접투자(FDI) 총액이 연간 약 1조6,000억달러 수준이라는 점에서 단일 프로젝트로는 이례적인 규모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만, 독일, 네덜란드 등 핵심 제조 강국이 참여국에서 제외된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움직임을 단순한 투자 프로젝트가 아닌 ‘경제·안보 동맹의 재편’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와 AI, 에너지 공급망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시장이 기술 블록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