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금리라는 ‘안전판’ 뒤에 가려져 있던 재산세와 주택보험료가 새해 들어 주택 소유자들의 재정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때 예측 가능한 내 집 마련의 핵심 장치로 여겨졌던 에스크로(escrow) 계좌가, 급등한 세금과 보험료를 즉각 반영하며 가계 부담을 키우는 구조적 리스크로 떠올랐다는 지적이다.
최근 몇 년간 재산세와 주택보험료가 급격히 상승한 지역을 중심으로 모기지 연체율이 뚜렷하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택 구매 이후 매달 자동 납부되는 에스크로 비용의 급증이 올해 주택 소유자들이 직면할 최대 위험 요소 중 하나로 꼽혔다.
에스크로 계좌는 주택담보대출 은행이 재산세와 주택보험료, 모기지 보험료 등을 대신 납부하기 위해 관리하는 계좌다. 모기지 원리금과 함께 매달 일정 금액이 적립되는데, 세금이나 보험료가 오를 경우 은행은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해 월 납부액을 자동 인상한다. 금리가 고정돼 있어도 실제 체감 주거비는 얼마든지 상승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이 비용이 사실상 통제 불능 상태로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리앨터닷컴(Realtor.com)의 조엘 버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에스크로 비용이 주택 보유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지역에서는 잠재적 주택 구매자들이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며 “고정 모기지가 더 이상 예측 가능한 지출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코탈리티 조사에 따르면 2019~2025년 사이 에스크로 비용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남부와 중서부였다. 콜로라도는 77%, 플로리다는 70%나 급등했다. 플로리다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집값 급등에 따른 재산세 인상에 더해 허리케인과 홍수 등 자연재해로 보험료가 폭등했고, 보험사들의 잇단 철수로 경쟁이 줄어들면서 부담이 더욱 가중됐다.
콜로라도 역시 산불과 우박 피해가 잦아지며 보험료가 급등한 데다, 2024년 재산세 감면 혜택이 일시에 종료되면서 ‘세금 쇼크’가 현실화됐다. 현지 중개업자들은 “월 모기지 납부액이 갑자기 수백 달러씩 뛰어 일부 가구는 은행에 수천 달러의 추가 납부를 요구받았다”고 전했다. 거래 시장은 매물만 쌓이고 가격은 내려오지 않는 교착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에스크로 부담 비중이 가장 높은 주는 네브래스카(월 납부액의 45%), 텍사스와 일리노이(각각 44%)로 조사됐다. 이들 지역은 집값은 비교적 낮지만 재산세율이 높아 세금과 보험이 모기지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일리노이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재산세율을 기록했으며, 시카고의 중간 주거용 재산세는 2024년 한 해에만 16.7% 급등했다.
텍사스의 한 브로커는 “소득세가 없다는 장점 때문에 텍사스로 이주한 가구들이 이제는 감당하기 힘든 재산세 고지서를 받아들고 당혹해하고 있다”며 “집값보다 유지비가 더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집값과 금리만 보고 주택 구매를 결정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입을 모은다. 보험료와 재산세, 관리비(HOA)까지 포함한 ‘총 주거비 계산’이 필수 조건이 됐다는 것이다. 에스크로 부담이 진정되지 않는 한 올해 주택시장은 가격보다 유지비가 수요를 가르는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조엘 버너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구매 결정은 더 이상 집값과 금리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보험료와 재산세, HOA 비용 같은 부수적 지출이 가계 재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