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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1500년~A.D.4 전후의 페르시아와 차라투스트라를 소환한 니체, 그리고 나 …
  • 김지면
  • 등록 2024-07-30 10:03:20
  • 수정 2024-08-08 05: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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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면 교수(문화 예술 평론) 

Doctor of Music Arts at California Arts University 

CAU IT Director & Professor

Church of Faith Senior Pastor(M. Div) 


오늘은 요즘 이스라엘과의 분쟁으로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란의 고대 시대 즉, 페르시아의 전성기 때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주전 1500년에서 주후 1000년 사이 페르시아는 문화, 경제, 군사 강국이었습니다. 특히, 문화적으로는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한류’ 이상의 소프트 파워를 갖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반면 이러한 영향으로 중국으로 부터 전해졌던 불교가 탄압받기 시작하여 영향력이 감소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A.D. 4세기 이후에는 기독교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등장 하여 지중해 지역과 아시아 전역에 퍼지면서 영향력을 키우게되는데 ... 이 쯤에서 중요한 인물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B.C.1500년 ~1300년 출생하였다고 전해지는  차라투스트라 라는 인물입니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영감을 받아 1896년에 작곡한 교향시가 있고,  영화 ‘21세기 오디세이’에서 도입부가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어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또 뒤에 업급하겠지만,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책으로도 유명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많은 예언과 가르침을 통해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를 창시하게 되는데, 초기에는 포교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A.D. 3세기 이후에 급속도로 페르시아 깊숙히 파고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기독교 전파에 대한 반작용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짚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조로아스터교가 A.D. 224년 페르시아의 사산왕조 등장 이후 권력층에까지 깊숙히 파고들면서 서서히 정치 권력화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힘이 커진 조로아스터교의 권력은 서서히 다른 종교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으며 페르시아의 군사, 경제, 정치, 문화 등 다방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고대 페르시아의 고위 사제 계급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0여년 간의 수행 생활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설파하게 되는데, 중요한 내용을 보면,  

‘인간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자로 선을 보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자유 의지를 지녔다’ 라고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굉장히 매혹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만, 반면 이는 기독교의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 심각한 도전이 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류는 철저히 죄에 속박되어진 저주 받은 존재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을 통해 구원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일련의 모든 복음의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로아스터교의 사상을 독일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인 니체가 받아서 이를  철학적으로 풀어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들도 한 번쯤은 제목을 들은 바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입니다. 


우리가 니체 하면 떠오르는 말이 바로 ‘신은 죽었다 ..’ 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신의 사망 선고를 내린 의미는 아닙니다. 그 뒤의 말을 끝까지 다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해자 중의 살해자인 우리는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입니다. 즉, 단순히 신의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 아니라, 신이 없는 듯한 이 세상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에 대해서 논하기에는 지금으로서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대략적인 핵심 부분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먼저,  본 책에 대한 니체 스스로가 언급한 내용을 보면 ..


“다섯 번째 복음, “ 미래의 성서”, 성서와 성서의 진리가 인류에 끼친 영향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며 그것도 성서와는 반대되는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단어 중에 핵심은 바로 ‘위버멘쉬(독일어: Übermensch / 영어: Overman) 입니다. 뜻을 보면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긍정할 줄 알아서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외부의 힘이나 절대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자’ 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사람의 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이의 세 단계로 분류합니다. 


낙타는 짐을 싣고 사막을 건너가게 해도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수동적인 인간상을 말하고, 사자는 따라가기만 하는 것을 벗어나 반항하는 존재로, '~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 용(드래곤)의 강압에 맞써 부정하고 투쟁합니다. 하지만 맹목적인 반항만 하기 때문에  고통과 허무감만을 느끼게되는 부정적인 존재입니다. 아이는 삶을 놀이로 파악하고 그것을 즐기게 되는데,. 끊임없는 놀이를 통해 질리지 않고 긍정하며 자신만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아이의 단계가 바로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가 됩니다. 


여기까지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결국 차라투스트라도 또 그의 사상을 해석한 니체도 인간의 구원은 인간 스스로 이루어 내야 하고, 또 이룰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불교도 누구나 수행을 열심히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과 현실은 어떻습니까 .. ?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보면 과연 이들의 이상은 그야말로 공허한 절규이자 몸부림 일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21세기를 사는 오늘도 실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과 힘을 의지해  영원한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이루어보고자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대해서 다섯번 째 복음, 미래의 성서라고 주장하였지만, 과연 우리가 알다시피 니체의 임종 때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역시도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서 그저 몸부림을 쳤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 사상, 종교가 직접적인 생산이나 경제적 행위를 하는 분야가 아님에도 인간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줍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정신 건강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과연 나는 자기의 한계를 극복하여 완전한 삶을 구현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인가…! 

바쁜 현실의 삶속에 있지만,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마음을 열어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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